디자이너, 디자인을 말하다
100여 명의 디자이너들의 말을 엮은 책이다. 상당히 오래전에 구입해 읽은 책인데 우연히 책꽂이에서 보고 다시 꺼내 읽었다. 디자이너로서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 고개를 끄덕이며 읽긴 했지만, 그 이상의 인사이트를 얻긴 어려웠다.
아래는 재밌게 읽은 말들.
디자이너들은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다. 반골 기질을 타고났다. 이제 다들 힘을 합쳐 세상을 바꾸는 데 제대로 기여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미천한 우리 회사도 기쁜 마음으로 계속해서 노력하려고 한다.
— 윌리엄 드렌텔 (1953~ )
글쓰기는 나에게 고문이다. 그래도 억지로 글을 쓰려고 애써왔다. 내가 정말 멋진 시대에 디자이너로 일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거기서 얻은 경험을 기록하기에 글쓰기만큼 훌륭한 수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안 사실이지만 디자이너의 1인칭 고백이야말로 정말 희소가치 높은 자료다.
- 로레인 와일드 (1953~ )
그동안 출중한 재능을 가진 디자이너들을 많이 데리고 일했다.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의 실력이 곧 나의 실력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채용을 가장 중요한 업무로 생각한다.
- 자넷 프롤리히 (1946~)
규칙을 전부 마스터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심지어 규칙을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체계가 없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 에드 펠라 (1938~ )
1975년에 그놈의 [I❤︎NY]를 만들었을 때 홍보용으로 두어 달쯤 가다 말겠거니 생각했다.
- 밀턴 글레이저 (1929~ )
두 가지 색을 섞으면 제 3의 색이 나온다니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이런 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카렐 마르텐스 (1939~ )
검은색보다 나은 색은 없다. 검은색 말고도 밝고 기분 좋은 색이 많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꽃에나 어울린다.
- 마시모 비넬리 (1931~ )
검정 글자, 검정 가죽, 검정 란제리, 검정 마크. 검정 넥타이, 검정 상자, 검정 드레스, 그리고 순식간에 백지를 부고장으로 바꿔놓는 검정 테두리에 이르기까지 심오한 검은색이 모든 상황을 잠식해 들어가 깊이를 더한다.
- 로레인 와일드 (1953~ )
우리가 몸담고 있는 업종에서는 삶은 콩에 대한 내용이건 인류의 미래를 논하는 내용이건 콘텐츠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필수다.
- 켄 갈랜드 (1929~ )
진실하지 못한 말을 가지고 자간을 열심히 조절해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만들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 에드워드 터프트 (1942~ )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좋은 아이디어를 한 다스 정도 찾아내야 한다. 디자인을 일곱 개 정도 하고 나면 문제는 하나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은 무한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요즘 나는 일을 하는 과정을 즐긴다. 한 다스의 홀륭한 아이디어 중에서 하나만 빼고 전부 쳐내야 한다는 사실은 물론 잘 알고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자유롭게 느껴지니 참 이상한 일이다.
- 게일 앤더슨 (1962~ )
아무도 봐주지 않을지라도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
- 솔 바스 (1920~1996)
문득 원서의 디자인이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원서 표지는 산세리프 글꼴을. 번역서 표지는 세리프를 타이틀로 사용했지만 톤 앤 매너는 비슷한 느낌이다. 또 한 가지 큰 차이는 원서 표지에 있는 Quotes, Quips, and Words of Widsom
문장이 번역서 표지에선 빠지고 대신 알파벳 D
가 큼직하게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문장이 빠지니 조금은 불친절한 표지가 되었지만, 한편으론 더 호기심이 가는 표지가 된 거 같다.
번역서 내지 디자인은 많이 아쉽다. 원서는 타이포그래피에 힘을 줘 대담한 느낌인 반면 번역서는 상당히 정적이다. 때문에 문장이 가지고 있는 늬앙스가 원서보다 훨씬 약하게 다가왔다. 또한 각 디자이너의 말이 가진 호흡이 다 똑같아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다. 이 책이 시리즈물이기에 다른 책들과의 통일성을 고려한걸까. 국문을 원서처럼 다양한 글꼴로 표현하기엔 공수가 크고, 폰트 사용에 제약이 있었던걸까. 그렇다면 영문을 크게 하고 국문을 작게 배치했으면 어땠을까? 물론 가독성은 떨어지겠지만, 디자이너가 타겟 독자층인 책이라면 충분히 해도 될만한 시도 아니었을까?
…어찌됐든 고민 끝에 결정한 최선의 선택이었길! 🤟